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W. 부시 (문단 편집) === 긍정적 평가 === 위와 같이 미국 국내로 보나 세계적으로 보나 대체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지도자이나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우선 미국 국내에서의 긍정적 평가로는 '''적어도 사생활은 깨끗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당시의 [[성관계|섹스]] 스캔들로 [[모니카 르윈스키|대통령 개인의 도덕적 이미지가 추락한 상황]][* 의회에 대한 [[위증]]죄로 '''[[탄핵]]소추'''까지 당했었다.]이었는데, 이전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개인의 도덕관에 있어서는 크게 흠잡을 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부시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200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며, 당시 부시가 상대인 [[존 케리]]에 비해 무엇이 낫냐고 생각했냐는 물음에 대한 지지자들의 가장 큰 이유가 다름아닌 '''"도덕성"'''이라고 했을 정도다. 사람됨됨이가 원체 좋아서 깊은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히스패닉]]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 것도 정치적으로 큰 장점과 업적 중 하나였다. 본인 역시 스페인어에 능통하였고 이는 [[21세기]]의 [[공화당(미국)|공화당]]의 입지를 확립하는 역할 중 하나를 담당했다. 이는 이후 [[플로리다]]가 레드 스테이트로 자리잡는 기초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히스패닉은 같은 히스패닉이라 하더라도 [[캘리포니아]] 등의 지역과 [[플로리다]] 등의 지역은 성향이 상대적으로 다르고 정치적 이슈를 받아들이는 입장도 상대적으로 모두 다르다. 게다가 부시가 세계적으로 저지른 짓과 정반대로, 개인적으로는 무척 친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2009년도에 경북 [[안동시]]의 [[풍산고등학교(경북)|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교장과 아는 사이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아버지 부시가 풍산고를 방문했었다. 이는 이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병산교육재단 이사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미국 정계와 연줄이 있기 때문이다. 정권 초마다 미국행 특사단에 매번 초대될 정도. [[http://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54855/|출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부시의 초청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연설을 했는데, 당시 풍산고등학생의 말에 따르면 경호원도 뒤로 물리고 학생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체로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던 기존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젊은 시절에 마약에 손을 대거나 1985년경까지 술을 좋아해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등 방황이 있었다는 점도 까이긴 하지만, 반면 엘리트 출신치고는 실수했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추스리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인간미와 [[인간승리]]를 이루었다는 좋은 인상도 준다. 그의 방황을 끝낸 건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충고로 독실한 [[개신교]]인이 된 것이 계기라고 하며[* 막상 [[조지 H. W. 부시|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공회]] 신자였다.],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에 와서 간증까지 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잘 믿고 '''아주 정의감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항목에서 몇 안되는 그에 대한 좋은 평가들은 물론, 나쁜 평가들조차도 어지간한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은 굳이 건들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문제에 뛰어든 정의감의 발로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일례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정의한 배경에는, 탈북자들 지원 행사를 위해서 관련 서적을 읽은 연유라는 뒷 이야기가 있다. 보통은 유감을 표명하며 사진이나 찍고 악수나 하면 그만이지만, 탈북자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탈북자 수기와 관련 서적을 읽었다는 것이다. '''즉, [[능력과 인간성이 별개인 사람]].''' [[이희호]] 여사는 부시를 아주 사랑스러웠던 사람으로 회고했다. 식기를 갖고 장난치다가 아내에게 혼나고 풀이 죽은 모습이 꼭 어린 아이같았다고 한다. 허나 이 양반이 정의감 만큼이나 공감 능력과 섬세함도 뛰어났기에, 연설에 앞서 다소 감정적이게 되었고, 그 수기에서 나타난 북한의 끔찍한 인권 탄압에 대해 표현한 것이 바로 "[[팩트폭력|악의 축]]"이었다. 부시의 이런 성향은 공중보건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미국 정부는 2001년 6월의 다크 윈터, 2005년 1월의 애틀랜틱 스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미국 사회에 천연두가 전파될 때의 파급효과를 연구했으나, 이에 대해 대비책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연구들은 [[톰 클랜시의 디비전]]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나중에 유명세를 얻는다.] 왜냐하면 공중보건은 정치적 인기를 얻는 정책 분야가 아니고, 로비스트들이 드나드는 떡고물이 있는 영역도 아니기 때문에, 딱히 이 정책 분야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부시는 2005년 여름에 역사학자 John M. Barry'가 저술한 The Great Influenza의 미출간 원고를 받아서 읽는다. 그리고 나서는 팬데믹 상황의 위험에 완전히 감정이입한 상태로 참모들을 직접 설득해서, 팬데믹에 대응할 방안을 수립하고 진행한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그 이전까지는 팬데믹에 대한 대처가 거의 전무하였으나,[* 앞서 언급한 2차례의 시뮬레이션도 생물학 무기 혹은 그에 준하는 사태에 대한 대처법을 연구한 것에 불과하였고, 공중 보건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상 질병도 인플루엔자가 아닌 천연두였던 것이다.] 부시 정부 이후로 비로소 대응할 수 있는 조직과 메뉴얼이 생긴다.[[https://abcnews.go.com/Politics/george-bush-2005-wait-pandemic-late-prepare/story?id=69979013|#]] 이때 도입된 개념이 그 유명한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하지만 공중보건 분야는 앞서 말했듯이 관심을 덜 받는 분야였고, 오바마 정부가 전임자의 업적에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은데다가,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활동을 억압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시 가문]]은 트럼프를 매우 싫어해, [[공화당(미국)|자당]] 대선후보에게 같은 당 출신 전임 대통령이 지지 연설을 해주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조지 W. 부시는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동생인 [[젭 부시]]의 정치 커리어를 트럼프가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코로나 19]]의 방역에 완전히 실패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의 행정적 무능이 가장 크게 기여한 덕이지만. [[도널드 럼즈펠드]]와 [[딕 체니]]가 실권을 잡은 것도 그의 무능으로 인하여 그가 자신의 참모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탓이 크다. 물론 두번째 임기 말에 가서 이라크전의 처참한 결과(상이군인들이나 유족들의 항의)를 직접 대하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체니와 럼즈펠드의 몰락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다. || [[파일:external/img.buzzfeed.com/anigif_sub-buzz-18457-1469125668-3.gif|width=100%]] || || [[조지 H. W. 부시]]의 손자, 조지 W. 부시의 조카이자 [[젭 부시]]의 아들인 [[조지 P. 부시]]의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 당시 모습. 1976년생으로 지금은 텍사스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또한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나 그의 지지자들에 비하면 인종이나 종교문제에 대해 훨씬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즉, 소수민족을 포용하여 "하나의 미국"을 지향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시가 대선 후보였을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에게 완전히 빼앗긴 흑인표에 대한 대항마로 급격히 증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민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생 [[젭 부시]]의 부인 역시 히스패닉계였기 때문에 [[부시 가문]]은 공화당 내에서도 더 히스패닉에 우호적인 축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아예 하루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히스패닉 유명인사들이 연사로 나오고 조지 부시의 조카이자 히스패닉 혼혈인 조지 P. 부시가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등 히스패닉 테마로 치루어졌다. 젭 부시의 부인이 히스패닉계여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조지 W. 부시를 밀었기에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진지한 분석까지 있었다. 실제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2000년 [[플로리다]]에서 부시는 537표 차로 겨우 승리했다. 제부가 히스패닉이라는 이유로 부시를 찍어준 유권자가 당시 인구 1600만의 플로리다에서 과연 500명도 안 될까? '''플로리다가 [[앨 고어]]에게 갔다면 부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파일:external/www.newsmax.com/88683956-c2f1-4134-9854-ceb4e1899b2d.jpg]]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무분별한 전쟁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무슬림]]이나 [[이슬람교]]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 자체는 상당히 포용적이다. 위 사진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지 '''단 6일 후'''였던 2001년 9월 17일 부시가 [[워싱턴 D.C.]]의 [[모스크]]를 방문한 장면으로, 이 때 부시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무슬림계 미국인들 역시 소중한 미국의 국민이다"''' 라고 말하면서 당시 팽배했던 무슬림 혐오 분위기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 이후 기나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늘 '''적은 이슬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었다. 물론 정책적으로 이 사람이 한 짓을 고려하면 무슬림계 미국인들은 결코 부시에 대해서 호의적일 수만은 없겠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9.11 직후 분위기가 차라리 지금보다는 나았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나 [[테드 크루즈]]에 비하면 말은 온화하게 하고 다녔다.[[http://www.cnn.com/2015/11/20/politics/paris-attacks-trump-carson-bush-muslims-refugees-mosques/|#]][* 대선 초선때 자신이 무슬림에게 80%가량 얻은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공화당 내 반이슬람 기류가 증가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삽질은 광범위한 무슬림의 심기를 건드려 이들은 민주당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된다.] 사담 후세인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옹호 여론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로는 자신들의 원수인 사담 후세인을 몰락시킨 은인이라는 게 가장 크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그렇게 상대적으로 무슬림들에 대해 온건했던 성향이 있다. 이외에도 [[네오콘]]의 일원으로 손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온화, 온건해서 막나가는 [[네오콘]]의 참모들을 어느정도 제어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된 그의 친절함과 인간적인 매력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친동생을 포함하여 당 최고의 유망주가 16명이나 나섰다가 [[도널드 트럼프|갑툭튀한 초짜]]에게[* 물론 트럼프는 정치에 초짜였던 것일 뿐 오랫동안 방송계에서 굴렀기 때문에 어지간한 정치인들보다도 각종 미디어에 빠삭한 사람이었다.] 탈탈 털린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비교해 봤을 때 2000년, 2004년 두 번의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부시의 정치적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아버지 부시가 대선 캠프에 자기 아들을 비서로 앉혔던 게 단순 혈연 때문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공사구분이 철저한 아버지 부시가 능력을 인정해 불러다가 비서 자리에 앉힐 정도면 조직을 꾸리고 캠프를 승리로 이끄는 데는 분명 재능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국외적으로는 그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평가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은데, 위에 언급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들 외에 유달리 그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알바니아]]가 있다. 부시가 동유럽의 강자인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압력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코소보]](알바니아계 민족이 대다수)의 독립을 지지하였기에 이 곳에서의 인기는 실로 엄청나다. 알바니아 크루야에는 그가 방문해 2층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었던 카페에 "조지 W. 부시"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수도 티라나에도 같은 이름의 거리가 있다. 정확하게는 국회와 INFOSOFT 건물, 몇 년째 공사 중인 고층 빌딩이 있는 바로 그 거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2460101|#]] 또한 결과적으로 재임기간 동안 [[미 연방정부 셧다운|셧다운]] 사태가 한 번도 없었던 점도 하나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다.[* 2차 임기 중간선거였던 2006년에서야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을 탈환했기 때문에 셧다운까지 진행될 여지가 적기도 했다.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 1차 임기 중간 선거 때부터 하원을 야당에 내주면서 고생해야했던 것과는 반대 상황이다.] 개인으로서의 부시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기 때문에 아직도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로부터 51%의 호감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18년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부시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에 비해 9% 증가한 수치이다.[[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W._Bush#Reception|#]] 이는 트럼프의 개인적인 이미지가 심각하게 추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인품 하나는 훌륭했던 부시가 재평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